반응형

다람쥐의 "역사" 한마당 41

게르마니아, 세계수도를 꿈꾸던 히틀러의 계획

현재 독일의 수도는 베를린이다. 300만명을 훨씬 웃도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때 동, 서 베를린으로 나뉘어진 아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통일 독일 이전에 베를린을 둘로 나눴던 베를린 장벽 물론 현재도 대도시급으로 규모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이지만 과거 나치정권 시절, 인구 1억명의 세계 수도로 계획된 역사가 있다면? 살찐 다람쥐가 과거 세계수도를 꿈꾸던 게르마니아에 대해 알아보겠다. 히틀러가 꿈꾸던 대제국의 수도 히틀러는 자신이 일으킬 세계 2차대전 승리 이후, 제국의 위용을 과시할 대제국의 수도를 만들고싶어했다. 기존의 낡은 도시 베를린을 갈아엎고 인구 1억명의 새 도시를 건설하려 했는데 이를 자신이 총애하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에게 맡겼다. 알베르트 슈페어 1차대전이 끝난 후, 정권을..

경신 대기근, 조선을 괴롭힌 참혹한 재앙

조선시대의 큰 재앙이라고 하면 흔히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일본, 청나라의 침략으로 수 많은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인데 사실 저 두 전란은 전근대 전쟁 특성상 군인들의 사상자가 많았을 뿐, 일반 백성들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 임진왜란의 경우 개전 초기에만 민간인 피해자가 나왔고 병자호란의 경우는 청나라의 속전속결 작전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대부분 청군의 모습도 본 적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저 두 전란이 훨씬 나았다고 평가할 정도로 참혹했던 재앙이 있었다면 믿어지는가? 바로 17세기 조선 최악의 재앙으로 불리던 '경신 대기근'이다. 오늘 살찐 다람쥐는 조선 최악의 재앙 '경신 대기근'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경신 대기근 지구상에 찾아온 소빙하기 17..

강대했던 고구려가 삼국 통일을 못한 3가지 이유

삼국통일의 최종 승자는 신라이다. 이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며 가장 약했으며 가장 늦게 발전한 신라가 최종 승리한 사례를 들며 "살아남는 자가 강한거다!"라는 인용문과 함께 설명되곤 한다. 그렇다면 3나라 중 가장 강했던 나라는? 한국인들 대부분은 '고구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도 고구려는 삼국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멸망하였으며 그들의 후손이 세운 발해도 결국 거란에 의해 망하였다. 살찐 다람쥐는 그렇게 강성했던 고구려가 왜 지도 위에서도 볼 수 있는 쬐끄만 나라인 백제 & 신라를 제압하지 못하고 망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1. 고구려는 낮은 인구밀도를 가진 국가 위의 지도를 보면 고구려의 최전성기 시절인 장수왕~문자왕 재위 기준으로 백제 & 가야 % 신라를 합친 것보다 몇배로 크다..

이순신의 흑역사, '녹둔도 전투'에 대해 아시나요?

우리민족 역사상 최고의 성웅, 구국의 영웅이자 파란만장한 삶은 산 사나이로서 현재까지도 칭송받는 남자. 현재는 한국조폐공사의 100원짜리 동전의 전속 모델이자 광화문 광장의 동상으로 근무하고 계신 그분이시다. 100원 동전에 나온 이순신 장군(상)과 광화문 동상으로 우뚝 선 이순신 장군(하) 이순신 장군: 동전에 자기 얼굴 올리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버럭!!) 아무튼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칭송하는 이 남자. 임진왜란 23전 23승, 절대 무적의 연전연승의 사나이로 알려진 그에게도 패배의 전적이 있다면 믿어지는가? 그런 그에게도 단 1패의 기록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현재 함경도 지방에서 러시아 관할지로 바뀐 '녹둔도전투'이다. 이번 시간에는 이 녹둔도전투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올리고자 한..

노인들로 이루어진 최강 부대, '은방패병단'에 대해 아시나요?

필자는 현대 한국인들 평균 입대 나이(20~21세)보다 늦은 23세 1월에 입대해서 24세 12월에 전역했다. 복무를 해보니 병사의 평균 연령은 20대 초반이고 직업군인들은 20대 중후반이 많으며 전투력이 정점에 이르는 중사 중후반 ~ 상사의 경우는 30대가 대부분이었다. 필자의 현재 나이가 35세이니 당시 30대 중반 정도되는 부사관들은 우리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짬과 전투력의 보유자들이다. 그리고 30대 후반에서 40대 정도 되면 상사 후반 ~ 원사쯤 되어 관리자 역할을 맡게 되고 50대쯤 되면 전역을 하게 된다. (이것도 장기 복무가 가능한 부사관 한정이다.) 그런데 부대원 전원이 60대 이상, 심지어 70대인 병사도 복무한 부대가 있다면 믿어지는가? 그것도 육체적 능력이 중요시되는 고대에? 복무 ..

효종이 살아있었다면 북벌은 성공했을까?

효종은 1649년에 즉위하여 약 10년간 제위에 오른 조선의 17대 국왕이다. 삼전도의 굴욕으로 유명한 병자호란 때, 그의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고 청나라의 문물, 제도, 군사 등을 직접 목격했고 심지어 조선이 그렇게 상국으로 모시던 명나라(정확하게는 이자성의 반란군이라 하겠다. 청나라가 명나라를 치기 전, 명은 이미 이자성 일당에게 멸망한 뒤였다.)를 무너뜨리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고 아버지의 굴욕 또한 목격한 효종(당시 봉림대군)은 이런 결심을 하게된다. 봉림대군: "내 기필코 청을 멸하리라!" 효종과는 다르게 형인 소현세자는 청의 문물을 받아들여 청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는 아버지인 인조의 노여움을 샀다. 인조: 내가 이 꼴을 당했는데 이 불효자 새꺄ㅑㅑㅑㅑㅑㅑ!!..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350여년에 걸친 수학 난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수학 역사상 최악의 난제이자 전 인류를 골치아프게 했던 문제이다. 프랑스의 변호사이자 수학자던 피에르 드 페르마에 의해 만들어진 공식이며 이 공식에 대한 350년에 걸친 역사를 살찐 다람쥐가 조명해보고자 한다. 피에르 드 페르마. 17세기 프랑스의 유명 변호사이자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는 여러 난제를 만들어냈으며 가장 유명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쓰며 주석에 이런 문구를 남겨 놓았다. 300년 넘게 전 세계 수학자들을 골치아프게 만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이 공식을 증명할 방법은 알고있는데 여백에 종이가 모자라 쓰지 못하겠다." ("니들 엿돼봐라 ㅋㅋㅋㅋ") 그리하여 전 세계 수학자들에게 다가올 재앙이 시작되는데... 이 엄청난 어그로에, 한동안은 아무도 해답을 찾지 ..

조선의 어이없는 굴욕 패배, 용인 전투

필자는 역사를 좋아한다. 역사에 흥미가 있고 특히 전쟁사에 관심이 많다. 한국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크게 승리했다, 대첩, 대승 이런것만 가르치지 "처참하게 패배했다.(쳐발렸다)" 이런건 역사에서 가르치지도 않고 가르쳐도 짤막하게 한줄? 이정도로만 가르친다. 필자는 "우리도 외세의 침입을 꽤 받았는데 과연 흑역사라고 불릴 정도의 대패가 설마 없었을까?"하고 궁금해서 찾아본 결과, 역시나 꽤 많은 전투에서 패배했고 특히, 심각할 정도의 대패도 몇 차례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 중에서도 임진왜란 초기에 있었던 용인 전투에 대해 조명해보고자 한다. 용인 전투의 개요 현재 광교 신도시 부근에서 조선군 7~8만명이 일본군 1600명에게 대패한 전투. 한국 역사상 최악의 패배 중 하나로 손꼽히며 이 전투의 승리로 ..

항우의 역습, 팽성대전

한창 초나라와 한나라가 세력을 다투던 BC 205년, 현재의 쉬저우 부근에서 벌어진 유방의 한군과 초나라 군대가 맞닥뜨린 전투. 유방의 56만 군대는 항우의 팽성을 점령하였고 이에 항우는 3만의 군대를 이끌고 나가 무려 19배의 전력차를 극복하고 승리한 전투. 그리하여 항우를 다시금 중원 최강의 사나이로 각인시킨 전투로 남은 사건이다. 오늘 살찐 다람쥐는 항우라는 위대한 남자를 중심으로 팽성대전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진나라의 몰락과 각지의 영웅의 탄생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는 시황제를 중심으로 철권 통치를 감행하여 각 지역을 억압하였고 그 뒤를 이은 호해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진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결국 진승, 오광의 난을 시작으로 각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결국 중국은 군웅할거의 시대로..

토끼와 호주의 끝나지 않는 150년 전쟁

유럽에서 건너온 호주 토끼 (살찐 토끼?) 원래 호주에는 토끼가 살지 않는다. 18세기부터 집토끼가 반입된 적은 있었는데 자연상태로 방목된 것은 1859년부터이다. 당시 토마스 오스틴은 영국에서 호주로 이민간 농장주의 아들 놈은 17세의 나이로 호주로 건너와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호주에서 농장을 경영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해갔고 40대에 이르러서는 더 이룰 것이 없을 지경에 이르렀지만 사실 그에게는 남모를 아쉬움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10대시절 떠나온 영국 본토에 대한 그리움이었고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었던 오스틴은 영국 본토의 모습을 재현하고자 영국의 사냥감들을 자신의 마당에 풀어놓기로 결심한다. 그 중 몇 마리가 마당을 탈주했고 그렇게 대재앙이 시작되는데..... 토마스 오스틴, 이 양반의 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