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큰 재앙이라고 하면 흔히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일본, 청나라의 침략으로 수 많은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인데 사실 저 두 전란은 전근대 전쟁 특성상 군인들의 사상자가 많았을 뿐, 일반 백성들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 임진왜란의 경우 개전 초기에만 민간인 피해자가 나왔고 병자호란의 경우는 청나라의 속전속결 작전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대부분 청군의 모습도 본 적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저 두 전란이 훨씬 나았다고 평가할 정도로 참혹했던 재앙이 있었다면 믿어지는가? 바로 17세기 조선 최악의 재앙으로 불리던 '경신 대기근'이다. 오늘 살찐 다람쥐는 조선 최악의 재앙 '경신 대기근'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경신 대기근
지구상에 찾아온 소빙하기
17세기, 세계적으로 기온이 1도가량 낮아지는 소빙하기가 찾아왔다. 유럽에서는 먹고살기 힘들어지자 마녀사냥이 횡행했고 에티오피아에서는 일년내내 눈이 녹지 않는 기현상도 발견되었으며 북아메리카에서는 원주민들이 얼어 죽기까지했다. 또한 일본의 칸에이&엔포 대기근이 발발했고 중국에서는 감귤 농장의 종자가 끊긴 사태가 발생하였다. 조선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경신 대기근의 서막
때는 1670년 현종 제위시기, 음력 정월에 불길한 징조가 찾아왔다. 음력 1월 1일 푸른 햇무리가 관찰되었고 4일에는 달무리가 관찰되었으며 1달 내내 햇무리와 달무리가 매일같이 관찰되었던 것이다. 보통은 다음날 비가 내릴 징조로 여기는데 매일같이 관찰되었다는 것은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고 조정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이에 유성이 자주 떨어져 엄청난 먼지가 발생해 햇무리를 가려 기온이 떨어지고 전국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지진이 발생했으며 각종 질병과 병충해가 연초부터 끊임없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대재앙의 서막을 올린 것이다.
갑작스런 이상기온으로 인한 흉작과 병충해로 곡물 생산량의 급격한 저하가 찾아왔다. 모내기를 해야 할 시기에 물이 다 말라버려 파종시기를 놓쳤고 우박도 자주내려 4살짜리 어린 아이가 우박에 맞아 숨진 사례도 보고되었다.
거대한 우박
게다가 한반도에 자주 발생하지 않던 지진마저 5차례나 발생하였고 태풍과 홍수가 발생하여 수 많은 가구가 물에 잠겼다고 한다. 이때문에 수 많은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 돌아다니게 된다.
농사꾼에게 공포의 대상인 메뚜기 떼
중국에서 날아온 메뚜기 떼로 인해 농사의 피해가 막심했고 이는 백성들의 굶주림으로 이어졌다.
전염병 피해도 막심했는데 먼저 가축들 사이에 전염병이 돌아 함경도에서만 무려 2600마리의 소들이 폐사하고 수만마리의 소들이 죽어나가게 된다.
수 많은 소들이 죽어나간 당시의 상황 (자료출처:EBS)
안그래도 굶어죽는 백성들이 즐비한데 소들도 죽어나간다면 눈이 뒤집힌 백성들이 어떻게 나올까? 그렇다. 백성들은 소의 시체를 뜯어먹고 살아있는 소까지 잡아먹어 안그래도 농사에 차질이 있던걸 당시의 농업 생산량은 더욱 크게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평소에 굶주리던 백성들이 급하게 (썩은)소고기를 먹게되면 어떻게 될까? 설사병에 걸려 숨진 사례도 속속 보고되었고 썩은 소의 시체를 먹다가 전염병을 옮아 죽는 사례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끔찍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청정하고 건전한 정보를 제공하는 살찐 다람쥐는 이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정색)
조정의 반응과 처리과정
백성의 굶주림에도 불구하고 왕과 대신들은 정쟁에만 관심이 쏠려ㅆ......다고 알고 있겠지만 사실과 전혀 다르고 실제로도 조정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경신대기근 당시에 장관급 이상 대신들만 10명이상 죽었고(질병은 부유층, 서민 안가린다.) 경신 대기근은 대책을 아무리 짜내도 답이 안나올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경신대기근 결과
당시 조선의 인구는 1000만명을 웃도는 정도로 약 1200만~140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자만 100만명이며 비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거나 실종된 사례까지 따진다면 사망자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나라 같았으면 각종 민란과 시스템 붕괴로 인해 왕조의 몰락으로 이어졌겠지만 당시 탄탄한 시스템을 구축했던 조선왕조는 그런 몰락없이 약 150년을 더 유지했다. 물론 타격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양반 중심의 신분제가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대규모 봉기는 없었지만 국지적 도적떼들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동법 지지여론이 확산되었고 대기근을 거치면서 많은 주민들이 함경도를 넘어 만주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영토 분쟁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는 훗날 간도 문제를 촉발시키게 된다.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 온돌이 전국적으로 보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온돌을 데우려면 땔감이 필요한데 이때문에 전국적으로 벌목작업을 하여 민둥산이 아닌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이러면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는 더 심해질텐데???)
21세기 대한민국에 경신대기근과 같은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는 팔리지 않는 쌀까지 1년치 식량을 비축해놓고 있으며 라면, 통조림과 같은 인스턴트까지 감안하면 전국민이 굶어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대신에 웰빙 따윈 없다!!)
17세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식량생산 기술이나 보존능력이 향상되었고 특히 질소비료를 이용한 옥수수 or 감자 재배로 3개월만에 전 국민이 먹을 구황식품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물론 어느정도의 식품 가격상승은 각오해야...)
결론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생산능력, 기술력, 운송능력, 보존능력으로는 경신대기근과 같은 참사는 일어날 일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는 얘기다. (이러한 점들을 갖추지 못한 3세계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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