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의 "역사" 한마당

청나라는 왜 조선을 멸망시키지 않았나?

잡지식을 다루는 살찐 다람쥐 2021. 3. 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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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음력으로 1636년 인조 14년에 청나라 홍타이지의 침공으로 조선의 왕인 인조가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은 사건이다. 청나라 군대는 '이괄의 난' 진압으로 인해 서북 방어군이 궤멸된 조선의 허술한 방어체계를 뚫고 한양으로 다이렉트로 진격하여 미처 제대로 도망치지 못하고, 남한산성에서 숨어 지내던 인조를 포위 끝에 굴복시켰다.

 

'삼전도의 굴욕'에서 인조 (드라마: 꽃들의 전쟁)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자! 이제 조선 왕도 굴복시켰겠다! 청나라는 조선을 완전히 병합하여 자신들의 영토로 흡수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자신들의 물자와 영토도 늘어나고 명나라에 맞서 더욱 국력이 강해질 것이다. 그런데 청나라 군대는 일부 군사만 남기고 돌아갔으며 조선도 인조를 왕으로 계속 국가를 유지했다. 그렇다면 청나라는 왜 조선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고 내버려 둔 것일까? 살찐 다람쥐가 알아보았다.

 

1. 청나라는 당시 경제난이 극심했다.

 

당시 청나라는 만주에 위치한 변방의 나라였고 인구밀도도 높지 않았다. 게다가 그 추운 만주 지방에서 농사가 잘되면 얼마나 잘되겠는가? 안봐도 뻔한 일이다.

 

현재의 만주 지역

당연히 먹고 살 길은 '무역'밖에 없었고 청나라는 교역상대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아시아 최강대국 명나라에 의해 교역이 끊겼고 병자호란 직전에는 조선한테도 교역이 끊겼다. 특히나 정묘호란 & 병자호란이 일어나던 17세기는 소빙하기가 한창이던 시기여서 농업 생산량이 급격히 떨어지던 시기였는데 이는 훗날 경신 대기근으로 이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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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 대기근, 조선을 괴롭힌 참혹한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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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청나라는 전쟁을 장기간 지속할 능력이 못되었고, 조선은 생각보다 막대한 인구와 경제력을 지닌 나라였다. 이들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기관도 세워야 하고 점령지의 주민들 반발을 최소화하고 억압 및 회유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런걸 다 감당하면서 국력을 소모한다? 그렇다면 훗날 명나라 정벌은 더욱 어려워졌을 것이다. 당시에는 아직 명나라가 건재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청나라가 원한 것은 조선의 완전 정벌이 아닌 조선과의 교역과 후방 위협 제거였을 뿐이다.

 

2. 청나라 군대는 생각보다 적었다.

 

청나라의 팔기군 중 하나

청나라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왔다고 구라(??)쳤지만 실제로는 추정치 4만 5000명 정도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것도 몽골 용병이랑 한인 포로들을 합친 숫자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정예 만주족 병사들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은? 정예 병사만 10만이 넘었다. 물론 남부지역의 방어군을 합친 숫자였겠지만 애당초 조선이 정상적인 나라였으면 병자호란은 질 수가 없는 전쟁이었다. 하지만 조선에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유능한 임금과 지휘관이었다. 김자점같이 아몰랑(?) 지휘관이 아니었다면 역으로 청 황제를 잡아 조질 수 있는 전쟁이기도 했다.

 

김자점: 나라고 안 무서운줄 알아???

게다가 조선의 강점은 바로 각 지의 의병이 아니겠는가? 그 상황에서 전쟁이 장기화되고 역으로 명나라가 올라와서 만주 본진을 턴다면? 세계사에 청나라는 없었을 것이다.

 

3. 청나라 병영에는 전염병이 돌았다.

 

당시 조선에는 '천연두'라는 전염병이 돌고 있었고 청나라 군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병력도 적고 그 적은 인원들이 천연두까지 걸려 하나 둘....1천, 2천 죽어나간다면? 당연히 장기전으로 갈수록 청나라에 불리한 전쟁이 될 것이다. 청나라 입장에서도 척화파들을 제거하고 후환을 싸그리 없애야 속이 편했을 테지만 청나라는 불행하게도 그럴 여유가 없었다. 홍타이지라고 천연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코로나 역시 신분을 가리지 않는다.) 만약 홍타이지가 천연두에 걸려 사망한다면 구심점을 잃은 청나라 군대는 아마 조선 정예군 + 지방군 + 의병들에게 개박살 났을 것이고 청의 만주 본진도 명나라에게 먹혔을 것이다.

 

이에 홍타이지는 인조와의 약속만 보고 두 왕자를 인질로 데려가는 것으로 쇼부봤다. 그리고 본국에 가서도 한 달 넘게 자가격리를 시켜 접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천연두가 얼마나 청나라 군대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는지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

 

4.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에게는 황제로서 인정받을 정치적 명분이 필요했다.

 

홍타이지 (영화: 남한산성)

홍타이지는 맨 처음 예전의 몽골제국이 아닌 맛탱이 간 몽골을 침략하여 자신 스스로 몽골의 칸으로 올라선다. 즉, 청의 황제이자 몽골(원)의 황제를 겸한 것이다. 당시 몽골이 제일 만만한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자신이 몽골의 칸으로 올라서 중원의 지배자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함도 있었다. 그리고 황제는 제후나 부하 왕을 거느려야 입장이 사는 법! 당연히 부하 왕을 찾던 중에 조선이 들어왔던 것이다.

 

인조: 아놔! 엿됐다!!!

청나라는 조선을 합병하기보다는 부하 국가로 두기를 원했고 그렇게 인조는 나라와 자신의 왕 직위는 유지한 채, 홍타이지 앞에 삼배구고두례(대가리 박기)를 시전한다. 그렇게 사실상 조선은 청나라의 신하국이 되었고 인조의 아들이자 어느 불꽃 군주의 복수심을 불지펴주게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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