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의 "역사" 한마당

강성했던 군사 왕국, 스파르타의 멸망 원인은?

잡지식을 다루는 살찐 다람쥐 2021. 3. 10.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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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강력했던 국가 중 하나이자 누구라도 '빡쎈 훈련과정'을 나타내는 대명사, '스파르타'라는 용어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만큼 역사에서 남겨진 임팩트가 엄청났으며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방식과 국가 체제에 대해 많은 이들이 경악을 하곤 한다.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의 왕, 레오디나스

페르시아를 격퇴하고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최강의 맹주로 군림하여 또다른 그리스의 강자인 아테네가 이끄는 델로스 동맹과 전쟁을 벌여 굴복시키기에 이른다. 물론 필자가 이전에 언급한 대로 아테네를 굴복시킨 건 무시무시한 스파르타의 군대보다도 '이것'의 영향이 더 컸다.

 

2021.01.06 - [다람쥐의 '역사' 한마당] - 전염병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나라, 그리스 아테네

 

전염병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나라, 그리스 아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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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렇게 강력한 패권을 누리던, 2021년 지금까지도 빡쎈 훈련 일정을 상징하는 나라, 스파르타가 갑자기 몰락의 길을 걷고 말았다. 육지전에서는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던 그리스의 강자, 스파르타가 왜 멸망해버린 것일까? 오늘 살찐 다람쥐와 함께 스파르타의 멸망 원인에 대해 알아보자!

 

강압적인 타 폴리스 통치 방식

 

아테네가 이끄는 델로스 동맹과의 전쟁을 통해 그리스의 패권을 차지한 이후, 각 도시국가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개별 도시들을 너무 강압적으로 통치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았고 결국 코린토스, 테베, 아테네, 아르고스 등의 도시들이 페르시아의 지원을 받아 코린토스 전쟁을 벌이게 된다. 

 

코린토스 전쟁

물론 전쟁의 승자는 스파르타였다. 하지만 스파르타의 피해도 적지 않았고 역시나 혼쭐이 덜난 스파르타는 강압적인 통치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스파르타는 한 동맹국의 뒤통수를 맞게 되는데...

 

테베의 신성부대
레우크트라 전투

게이들로 이루어진 '신성부대'를 좌익으로 한 테베군에게 레우크트라 전투에서 사선대형 전술에 말려 패배하고, 그 이후에 몰락하여 명맥만 겨우 이어간 채, 결국 로마에게 합병되기에 이른다.

 

인구 감소

 

스파르타는 지금의 북한 정도는 천국으로 보일 정도로 폐쇄적이고 가혹한 군국주의적인 국가였다. 당연히 외부에서 유입되는 이주민은 없거나 극히 적었고(북한으로 이민 가고 싶은 이민자 손?) 강한 자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인식으로 영아 살해와 유기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게다가 잦은 전쟁으로 그나마 스파르타 사회를 지탱해주던 청장년 남자의 수도 줄어들어 레우크트라 전투 당시에는 영화 '300' 시절의 스파르타보다 인구가 80% 이상 줄어들었다. 인구가 곧 국력이던 고대 사회에서 스파르타의 멸망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심지어 레우크트라 전투 당시에 스파르타 군은 왕인 클레옴브로투스가 죽든 말든 도망치는 추태도 부렸다. 원래 스파르타 군법에는 이들을 모두 처형시켜야 하지만 인구감소 문제 때문에 이들을 처형시키지 못했고 이는 국가기강의 해이로 이어지게 된다.

 

스파르타는 본래 소수의 스파르타 시민과 다수의 노예들로 구성된 도시국가이다. 원래부터 소수였던 시민들이 더욱 극소수가 되어버려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였고, 잦은 전쟁으로 인한 인구 감소와 전쟁에서의 패배로 인해 지배하던 다른 폴리스(특히 한 맺힌 메세니아)들에게 무시당하고 지원을 중단당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로 인구가 적어진 스파르타는 늑대같이 물어뜯는 주변 폴리스들에게 냠냠쩝쩝 당하게 되고 예전의 영광은.....

 

빠잉~~~

경제에 대한 무지

 

개인적으로 사실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경제를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떻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왜 세계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지, 그리고 북한의 체제가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리쿠르고스

이 포스 쩌는 할아버지는 기원전 7세기에 스파르타를 강성한 폴리스로 만들기 위해서 스파르타는 군국주의적 국가로 만들고 사치를 금하기 위해 화폐를 금화에서 철막대기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훗날 스파르타의 재앙의 근원이 된다.

 

스파르타의 철막대기 화폐

그리고 음식을 맛없는 '검은 국'으로 통일한다. 딱 봐도 맛없게 생겼다.

 

스파르타 전사들이 먹는다는 검은 국(Melas Zomos)

스파르타 사회는 정치 & 군사적으로 완전한 공동주의를 표방하였다. 그런데 경제적으로는 철저히 개인주의를 고수했다(이건 뭔;;). 공동식당(Syssitia)에서 식사를 하는 비용과 자녀를 학교(Agoge)에 보내는 비용도 모두 개인의 몫이었다. 공동식사비나 교육비용을 내지 못하는 것은 스파르타 시민으로서 최악의 수치였을 뿐만 아니라, 자유시민의 지위를 박탈당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였다.

 

어찌됐든 고대의 육군은 어느 정도 정신력과 훈련(경제력은 시민들에게 삥 뜯는 걸로)으로 경제력을 커버할 수 있다. 이에 병영생활을 통해 일생을 보내는 스파르타 인들은 육군에서만큼은 그리스 최강으로 손꼽혔다. 그런데 문제는 해군력이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노란 부분이 아테네 영역이다.

아테네가 중상주의를 바탕으로 여기저기 멀티를 확장하여 자금력을 확보하고 다닌다. 멀티 확장도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해군력이 지탱되어야 유지될 수 있는 법! 이에 쫄린 스파르타가 아테네에게 선전포고한 전쟁이 바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그렇게 아테네를 군사력(이 아닌 전염병)으로 털어버리고 아테네의 부가 스파르타로 흘러들어오게 되자 스파르타에겐 변화가 찾아온다.

 

졸지에 부자??

갑작스레 자본주의에 눈을 뜬 스파르타 인들은 정신을 못차렸고 이는 스파르타의 급격한 몰락을 가져온다. 스파르타는 현재의 북한마냥 굉장히 폐쇄적인 사회였으며 상업 활동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사치도 몰랐는데 오죽했으면 스파르타의 왕이 "이 나라에는 네모난 모양의 나무가 자라는 모양이오?(기둥을 세울 때, 공예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라고 했을 정도이니.

 

스파르타는 동맹시로부터 무제한적인 세금을 착취하면서 절제되지 못한 사치와 향락에 빠졌고 어떤 시민들은 자신들의 토지까지(영끌???) 팔아제끼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일부 시민들(투자 감각 굿?)에게 토지가 집중되어 빈부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고 대부분의 스파르타 인들은 공동식사비와 교육비를 못 내는 사태도 벌어지며 스파르타 시민권을 가진 시민들의 대거 몰락이 이어졌다. 자연스레 병력의 수는 감소하고 이는 군사력의 약화로 이어져 테베한테 털렸다는 것이다. 

 

테베한테 털리자마자 자신들의 자금줄인 식민지들을 잃어버리고 결국 그저그런 명맥만 유지하는 도시국가로 전락하고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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