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의 "역사" 한마당

인류 역사상 최악의 역병, 흑사병에 대하여

잡지식을 다루는 살찐 다람쥐 2021. 1. 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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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코로나로 대한민국이 두려움에 휩싸였다. 필자는 과거 전염병이 역사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고 심지어 전염병으로 인해 망한 두 국가에 대해 포스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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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류 역사상 최악으로 평가받는 전염병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 역사를 조금이나마 공부하신 분들이라면 다들 흑사병(Pest, Black Death, Plague)라고 대답할 것이다. 과연 인류사에 가장 치명타를 입힌 이 흑사병이란 질병은 언제부터 발생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는지에 대해 살찐 다람쥐가 알아보았다.



흑사병으로 고통받는 유럽인들


흑사병은 14세기에 유럽을 중심으로 전방위적으로 퍼져나갔지만 사실 'made in Europe'은 아니다. 사실 흑사병은 중국 운남지역에서 처음 나온 풍토병으로 (코로나: ㅋㅋㅋㅋ 이웃 사촌 ㅋㅋㅋㅋ) 몽골제국이 유라시아를 정복하면서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몽골의 유럽 원정기에 대해서는 수부타이의 이야기를 다룬 포스팅으로 일전에 언급했었다.


2020/09/12 - [다람쥐의 '역사' 한마당] - 위대한 정복자, 수부타이


몽골은 여러 칸국으로 나누어 분할 통치했는데 이때 무역이 활발해지고 이 때문에 흑사병을 유럽으로 옯겨왔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가까운 칸국인 킵차크 칸국은 흑해 연안에 위치했는데 예로부터 흑해는 무역의 요충지이고 무역으로 먹고사는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여기에 왔다갔다 하면서 흑사병을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크림반도에 가자리아라는 제노바의 식민지가 있었는데 그 중, 중심도시였던 카파라는 곳을 킵차크 칸국이 침공했다. 카파는 전력이 훨씬 열악했기에 공성전에 돌입했는데 몽골은 심통이 났는지 흑사병에 걸린 시체를 투석기로 성안에 내다 던졌다.(어차피 우리가 못 먹을거, 니들끼리 엿되바라 ㅋㅋㅋㅋ) 이런 식으로....



깜짝 놀란 상인들은 당연히 도망갔고 이탈리아의 메시나로 상륙했는데 이게 흑사병의 유럽정복 서막이 오른 사건이었다. 입항하는 배의 선원들이 모두 피부가 검게 변한 채로 죽어있었고 소수의 생존자들도 모두 피부가 검게 변해있었다. 메시나는 이를 눈치채고 바로 추방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추방된 배는 제노바로 돌아갔고 메시나로부터 시작해서 흑사병은 3년 내에 전 유럽을 휩쓸었다.



흑사병 유럽 전파의 경로


당시에는 소독제나 백신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기도하랍시고 성당이나 교회나 가라고 하고 앉아있으니.....당연히 교회에서 옹기종기 모이면 전염병이 더욱 퍼지는 것은 당연지사. (코로나:ㅋㅋㅋㅋㅋㅋ) 또한 흑사병은 신의 징벌이라고 하여 스스로 고행의 순례를 도는 '채찍 고행단'이란 것도 만들어 순례를 다니며 전염병을 전파했다.(아놔;;;)



채찍 고행단(꼴깝단)


당시에는 교황을 중심으로 한 카톨릭이 막강했는데 카톨릭도 이 사태에 대해 인지했는지 성직자들도 의료행위까지 하고 다녔다. 물론 결과는 떼죽음!!


심지어 수도원들도 전염병을 피할 수 없었는데, 어떤 수도원에서는 수도사들이 다 죽고 한 명만 남은 상태에서 비참한 현실에 대해 기록하다가 자기 자신도 죽어버려서 기록이 끊긴 사례도 있다고 한다.



흑사병 창궐 당시의 의사


당시의 의사들은 저런 까마귀같은 복장을 입고 다녔는데 저게 단순히 웃기려고 저러는 것이 저~얼대 아니다. 중세 유럽인들은 냄새가 병을 전파한다고 생각했고 꽃이나 향료를 들고나녀 전염병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의사들은 저 까마귀같이 생긴 가면의 부리 쪽에 향료를 넣어 두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환자와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인지 정도는 있었고 가죽 모자, 가죽 가면, 가죽장갑, 길다란 가죽 옷 등으로 접촉을 최소화시켰다. 그리고 의사들도 환자가 쓰던 물건을 태워버리는 등, 방역 작업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중앙방역대책본부같은 기관도 없었고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같은 시스템도 당연히 없었다. 그래서 지역별로 방역 성과는 천차만별로 달랐는데....


아이슬란드같이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이거나 폴란드처럼 농업 중심에 빠른 국경봉쇄를 이룬 국가들, 그리고 밀라노 처럼 환자가 나온다 싶으면 집에 가둬놓고 못박아버리는(헉;;;) 곳들은 방역에 성과가 있었다. 피해를 심하게 입은 다른 지역이 6~70프로 사망자가 발생할 때, 이들 지역은 1~20프로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흑사병이 유럽 사회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일단 성직자들이 죽어나가고 교회에 대한 불신이 생겨 신앙심이 무너졌다. 게다가 중세 봉건주의가 붕괴되기 시작했으며 인구가 많이 줄어(특히 하층민들) 상대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 처우가 많이 올라갔다는 장점이 생겼다. 


이에 중세적 가치관이 몰락하여 대중은 합리적 사고를 하여 르네상스를 꽃 피울 수 있게 되었고 노동력 부족을 기계화로 만회하기 시작해 오히려 생산력을 더 늘릴 수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영향으로 구텐베르크는 금속활자 인쇄술를 발명하여 기존의 노가다 작업을 상당부분 개선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그렇다면 흑사병은 완전히 사라졌을까? 지금도 아프리카에는 매년 흑사병 발병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치료법이 발달해있고 항생제도 있기 때문에 일찍 치료하면 살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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