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의 "인물" 탐구실

베트남을 구해낸 전설적인 몽골 킬러, 쩐흥다오 스토리

잡지식을 다루는 살찐 다람쥐 2021. 1. 25.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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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2년, 징기스칸이라는 작자가 태어나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정복작업을 하더니, 이후에는 역사상 최강의 장수라던 수부타이라는 작자도 나타나 전 세계가 몽골군의 말발굽 아래 쓰러져갔다.


2020/09/12 - [다람쥐의 '역사' 한마당] - 위대한 정복자, 수부타이


세계 최강의 몽골군의 '거의' 모든 국가들을 멸망시키며 전 세계를 차근차근 정복, 마침내 대제국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거의' 모든이다. 그 이유는 중국 남쪽의 동남아 지역을 정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시 동남아 풍경 감상(코로나만 끝나봐라! 바로 간다!!!!!)


당시 몽골(원나라)은 절정의 국력을 자랑했고 주변에 위협이 될 모든 나라들의 복속을 꿈꿨다. 동남아의 길목을 막고 있는 베트남도 예외는 아니었고, 이에 베트남을 쓸어버리려 했지만......몽골의 허망된 꿈은 베트남 역사상 최고의 영웅, 쩐흥다오 장군의 영화같은 대활약의 서막을 위한 희생양을 자처할 뿐이었다.



쩐흥다오 장군 동상


때는 13세기 중반, 몽골(원나라)은 총 3차례에 걸쳐서 베트남(대월)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1차 침입인 1257년에는 그렇게 본격적인 침략은 아니었다. 중국에서 아직 남송이 건재했기 때문에 몽골 입장에서도 베트남 정복에 전력을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몽골은 잔대가리를 굴려 베트남에게 요구한다.


몽골: 나 남송 먹어야되니깐 너도 군사 보내라! 식량도 서비스로 준비 해놓고!


하지만 몽골의 잔대가리에 속아 넘어갈 일 없는 베트남은 남송 다음에는 당연히 자기네들 차례인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베트남 국왕은 몽골에게 한 마디 남긴다.



빡친 몽골군은 베트남을 침공했고 대월의 수도 탕롱(지금의 하노이)을 단숨에 함락시켰다. 하지만 무더운 날씨와 풍토병 때문에 철수하게 된다.



나폴레옹: 난 추워서 털렸는데...ㅋㅋㅋㅋㅋ



히틀러: 나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1/06 - [다람쥐의 '역사' 한마당] - 화가였던 아돌프 히틀러, 나치의 총통이 되기까지


이를 노리고 베트남군은 몽골에게 뒤치기를 시전, 몽골군은 큰 피해를 입게 된다. 하지만 이때의 몽골군은 주력 부대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남송을 꿀꺽! 하는 것이 먼저였기에 일단 화평을 맺고 훗날을 도모한다. 물론 철수하면서 몽골군은 이 한마디를 남기는데...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 몽골 제국은 여러 칸국으로 나뉘었고 중국 지역, 즉 원나라는 징기스칸의 손자인 쿠빌라이가 물려받았다. 1279년에는 완전히 남송을 쓸어버리면서 중국을 통일, 이제 쿠빌라이에게 남은건 30년 전에 정복하지 못한 땅, 베트남이었다.




현재 기~일게 늘어진 영토와는 달리 과거에는 중국과 가까운 북부에만 위치한 작은 나라였다. 베트남 아래에는 '참파'라는 나라가 존재했는데 원나라는 동남아시아의 무역을 장악하고 있는 참파부터 조지려고 마음 먹는다. 이때, 베트남(대월)에게 협조를 요구하지만 눈치빠른 베트남 왈!



이에 빡친 원나라의 쿠빌라이는...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온화한 저 외모에 속지 말자!)



쿠빌라이: 베트남 저 간나 쉐키들 다 쓸어버리갓어!!


쿠빌라이는 자신의 아들 토곤을 내세워 50만 대군으로 베트남을 침공한다. 50만? 쉽사리 감이 안잡힌다면 대략 이정도라고 봐도 무방...




1차 침략에 이어 이번에도 수도 탕롱이 함락되었고 멸망 직전에 몰렸다. 당시 베트남의 군사들은 "몽골 놈들을 조지자!"라는 의미로 '살달'이라는 글자를 팔에 새기고 싸웠다고 한다. 이를 본 몽골의 장군 오마르는 이걸 보고 부하들에게 명령한다.



몇몇 대월(베트남)의 황족과 귀족들은 쫄아서 이미 원나라에 항복했고, 대월의 황제였던 인종도 끝내 항복하려 했으나 우리의 영웅, 쩐흥다오가 나타나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쩐흥다오


쩐흥다오: 항복하려거든 신의 목부터 베소서! (폭풍간지)


쩐흥다오의 개간지 설득에 정신차린 인종은 마음을 바꾸어 결사항전하기로 마음먹는다. 쩐흥다오 장군도 직접 호소문을 써서 전국 각지에 뿌렸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쿠빌리아의 대가리를 대궐 아래 매달고, 토곤의 살점을 장안 거리에서 썩게 하자!"


라고 섬뜩하면서도 결의에 찬 글로 베트남 젊은이들을 매료시켰고 전국에서 25만의 병력이 집결하게 된다. 쩐흥다오와 25만 군대는 정글과 산림을 이용한 게릴라 전술로 (월남전) 몽골군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이런 곳에서...



(파월 한국군은 이런 곳에서 고생하셨다.)


말타고 다니던 몽골군은 700년 뒤에 미군들도 고생하던 정글에서 서서히 지쳐갔고 풍토병에 시달린 나머지 결국 퇴각을 결정한다. 이렇게 베트남 2차 원정도 실패로 돌아간다. 당연히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의 표정은.....



2년 뒤에 쿠빌라이는 바로 3차 원정을 감행하였고, 토곤을 사령관으로 광동 광서 운남 3방면으로 침공하였다. 역시나 우리의 몽골 참교육 전문가 쩐흥다오는 2년 전의 경험을 살려 전면전을 피하고 숲 속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며 소모전을 유도했다. 역시나 몽골군은 이번에도.....


탈탈탈....


토곤은 남은 패잔병으로 백등강을 통해 퇴각하기로 하는데 우리의 노련한 쩐흥다오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백등강 유역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커서 수위가 심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곳이었는데 쩐흥다오는 몽골군이 백등강으로 퇴각할 것을 예측하고 강 상류 밑바닥에 쇠말뚝을 촘촘하게 심어놓았다. 몽골군의 함대를 고립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쩐흥다오는 일부러 몽골군에게 싸움을 걸어 백등강 상류로 유인하였고 몽골군은 백등상 상류로 퇴각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썰물이 되어 수위가 낮아지고 몽골군은 꼼짝달싹 못하게 된다. 이때, 대월군은 총공격을 감행하였고 당연히 몽골군은....



너무나 빡친 나머지 쿠빌라이는 4차까지도 계획했다. 하지만 3차전까지 전쟁을 치른 대월군은 승전국이라도 더 이상 전쟁을 치를 감당이 안 되었고 원나라에 조공을 하고 신하국이 될 것을 간청한다. 하지만 복수심에 불탄 쿠빌라이는 베트남의 완전 병합을 꿈꿨고 그렇게 4차전이 펼쳐지나 싶었으나 쿠빌라이의 사망으로 무산되고 만다.



쩐흥다오 동상


당대 최강인 원나라를, 그것도 세계를 정복했던 원나라를 무려 세 차례나 막아낸 점은 지금도 베트남인들에게 자랑거리이다. 쩐흥다오의 육체는 1300년 자연으로 돌아갔지만, 슈퍼 파워에게 맞서 굴하지 않는 쩐흥다오의 정신은 이후에도 이어져, 프랑스와 중국 그리고 미국을 막아내는 성과를 거두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베트남인들에게 자랑거리로 남아있다. (한국에서는 베트남의 이순신으로 유명하다!)


"군대를 단결시키고 백성을 너그럽게 하여 위업을 달성하라!"는 유언을 남긴 쩐흥다오는 마지막까지 조국을 생각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가 죽은 후, 7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베트남은 잦은 외침과 식민지배 생활을 경험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베트남인들은 이를 극복했고 앞으로도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것이다. 쩐흥다오의 정신이 베트남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함께할 것이기에.....


덤으로 약 666년 뒤, 남베트남 화폐 전속 모델로 채용된 쩐흥다오




쩐흥다오: 이순신 보고있나? 나도 조폐공사 모델이지롱~~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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