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의 "인물" 탐구실

악마의 드리블러, '작은 새' 가린샤의 이야기

잡지식을 다루는 살찐 다람쥐 2021. 1. 1.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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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빈민가에서 작은 사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소아마비를 겪어 한 쪽 다리가 6cm나 짧았다. 키도 169cm라는 왜소한 체격에 지능은 성인이 되어서도 8살 아이 정도의 지적장애인. 척추는 S자로 휘어 누가봐도 밥 벌어먹기도 힘든 팔자로 보였고, 의사는 그에게 운동선수가 될 수 없고 평생 보조장치에 의존하거나 휠체어 신세를 질 것이라 했다. 온갖 장애를 가진 그가 운동선수가 될 것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다! 그는 바로 역사상 최강의 윙어로 손꼽히는 악마의 드리블러, 최강의 브라질 대표팀을 이끌던 전설적인 축구선수, 가린샤! 브라질 축구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한 사내의 축구인생이 시작된다.



축구를 좋아했지만 신체적 결함이 있던 가린샤는 누가봐도 선수로 성공하긴 글러보이는 아이였다. 왜냐하면 일단 키도 작았고(169cm) 비쩍마른 외모에 무엇보다도 왼쪽 다리가 굽은데다가 오른쪽 다리보다 6cm나 더 짧았기 때문이다.



당시 가린샤의 다리, 딱 봐도 왼쪽 다리가 짧아서 들려있는게 보인다.


하지만 그는 프로구단에 입단하고 싶었고, 보타포구 축구팀의 감독을 쫓아다녀 늘 귀찮게 했다. 귀찮아진 감독은 당시 세계 최고이자 역대 최고의 왼쪽 풀백으로 불리는 니우통 산투스를 붙여줘 입단테스트를 명목으로 "쟤 좀 혼내주라!"라고 했으나...



니우통 산투스: 제가 털렸는데요!


가린샤를 내쫓으라고 보내졌던 니우통 산투스는 오히려 가린샤를 적극 영입하라며 구단에 어필! 결국 가린샤는 보타포구 FR과 계약하여 정식으로 프로선수로 데뷔하였다.



한 쪽 다리가 짧았다는 것이 단점이었지만 가린샤는 그것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경기 중에 십분 활용했다. 그의 신체적 결함은 상대방에게 예측불허의 드리블을 선사했고 그런 가린샤를 막을 수비수는 거의 없었다. 그의 화려한 드리블로 리그를 뒤흔든 가린샤는 브라질 대표팀에 뽑혀 1958 스웨덴 월드컵에 출전하여 펠레와 함께 우승을 이끌었고 1962년 칠레 월드컵에도 출전하게 되는데...



펠레(좌)와 가린샤(우)


당시 브라질의 에이스였던 펠레는 부상으로 조기에 빠지고 사실상 가린샤의 무대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는 화려한 드리블로 상대방 수비수들을 뒤흔들며 결승까지 올라갔고 마침내....



상대방과 볼 경합을 벌이는 가린샤



우승컵을 선보이는 가린샤


당시 가린샤는 "6경기만 뛰어서 승리했는데 우승이라니 놀랍네요!"라는 천진난만한 대답을 했다고한다. 당시 가린샤가 이룬 성과는 월드컵 우승, 골든볼(대회 MVP), 골든슈(대회 최다 득점자). 이것들을 모두 이룬 선수는 역사상 단 3명, 가린샤(1962), 마리오 캠페스(1978), 파울로 로시(1982)이다.


가린샤에 대한 평가


그는 장애를 극복하여 위대한 축구로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인간승리의 표본이다. 그는 브라질 축구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로 굳건한 지위를 유지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브라질에는 수 많은 소년들이 제2의 가린샤가 되기 위해 꿈을 품고 뛰고 있다. 


하지만 사생활은 좋지 못했는데, 방탕한 생활과 말년에 자기관리 부족으로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 알코올 의존증을 겪어야했다. 결국 그는 50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간경화로 사망한다.



가린샤의 장례식, 위대한 선수를 보내는 팬들의 배웅


신체적으로 장애를 앓았지만 그라운드에서 만큼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악마의 드리블러, '작은 새' 가린샤는 어린시절의 가난과 불행, 자기관리 실패로 지천명을 넘기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축구 팬들의 가슴 속에는 잊을 수 없는 화려함과 임팩트를 남긴 전설적인 드리블러로 영원히 남아 있으며 여전히 축구 역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아마, 저 하늘에서는 '거대한 새'로 훨훨날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어린시절의 불행은 뒤로하고 그라운드에서의 영광을 품에 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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