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의 "역사" 한마당

삼전도의 굴욕, '삼배구고두례'란?

잡지식을 다루는 살찐 다람쥐 2021. 8. 2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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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627년, 동북아의 신흥 강자, 후금은 조선의 인조가 친명 정책을 펴자 이를 구실로 정묘호란을 일으킨다. 조선은 후금을 형님으로 모실 것으로 약속하고 후금군은 물러가게 된다. 하지만 이후,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다시금 조선에게 군신관계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조선 조정은 주화파와 주전파로 갈라지게 되고 결국 주전파가 대세를 이루어 전쟁을 결사한다. 당연히 청은 1636년 조선을 침공하게 되는데 이 전쟁이 바로 병자호란이다.

 

병자호란 발발, '영화 - 최종병기 활'에서

 

조선은 강화도로 피신하여 항전하려 했으나 이미 고려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수법을 간파해 온 청군은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막았고, 어쩔 수 없이 조선의 임금,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기에 이른다. 이에 국왕을 중심으로 조선군은 결사항전을 준비하는데...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하지만 청군은 이미 누르하치 시절부터 탄탄한 조직력과 비전으로 동아시아 최강으로 군림한 군대였고 조선은 아직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실정이었다. 결국 인조는 청나라의 황제, 청 태종에게 항복하고 중국식 예법인 '삼배구고두례'를 행하고 만다.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는 인조, 드라마 꽃들의 전쟁

삼배구고두례는 삼'궤'구고두례라고도 하는데 한자로 "석 삼 & 꿇어앉을 궤 & 아홉 구 & 두드릴 고 & 머리 두 & 예절 례"로 청나라 황제를 대면할 때 취하던 예법이다. 만주어로는 "일란 냐퀀 우윤 헝킨 이 도로"라고도 한다.

 

 

삼배구고두례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첫 시작은 구령에 따라 시작한다. '파이다(정렬하라)'라는 구령에 자리를 잡고 선다. '나쿼라(꿇어라)'라는 구령과 함께 무릎을 꿇고, '헝킬러(조아려라)'라는 구령에 양손을 바닥에 두고 머리를 세 번 조아린다. 이게 1세트로 총 3세트를 반복하면 3번 무릎을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린(땅에 처박)다.

 

드라마 - 꽃들의 전쟁 에서

대중적으로 인식하기로 머리에 피가 날 정도로, 바닥에 찧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세게 박지 않으면 다시 행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런 건 없고 바닥에 닿을 정도면 된다고 한다.

 

외국인들 중에는 조선 인조만 청나라 황제에게 행한 것만은 아니다. 건륭제 시절(1792년)에는 영국의 사신이 건륭제와 대면할 때, 삼배구고두례를 청나라 측에서 요구했지만 영국 사신은 쿨하게 셍까고 결국 외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네덜란드 사신들은 청나라와의 무역을 위해 청나라 황제에게 삼배구고두례를 행했으나 네덜란드 사신들의 꿍꿍이를 파악한 청 관료들에 의해 본전도 못 건지고 돌아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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