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의 "인물" 탐구실

홍어장수 문순득의 아시아 표류기

잡지식을 다루는 살찐 다람쥐 2020. 11. 15.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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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홍어장수를 하던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문순득. 전라도 신안군 우이도에 살면서 홍어장수를 하던 장사꾼이었고 당시 조선의 평범한 백성이었다. 하지만 살찐 다람쥐가 알아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그의 엄청나게 파란만장한 일대기 때문이다. 조선판 로빈슨 크루소라 불릴 정도로 아시아를 돌며 자신의 인싸력을 바탕으로 세상을 누빈 남자, 문순득. 이제 살찐 다람쥐의 세상만사에서 그의 일대기가 시작된다.



문순득(1777~1847)


1801년 어느날, 24살 청년 문순득은 흑산도에서 홍어를 사기 위해 태사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난다. 그리고 한 달 동안 표류한 끝에 그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오키나와


당시에 오키나와는 일본 영토가 아니라 류큐국이라는 동아시아의 섬나라의 영토였다. 문순득의 일행은 운 좋게도 현지인들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지냈다. 아마 문순득도 놀랐을 것이다. 이렇게...



아무튼 이렇게 먹고 자고가 지겨웠던 문순득은 자신의 인싸력을 주체할 수 없었던 탓인지 8개월 가량, 현지인들과 가깝게 지내며 류큐어를 배우고 마침내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다. 중국으로 가는 류큐국의 조공선을 타고 중국을 거쳐 조선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계획은 완벽했고 문순득 일행은 무사히 조국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다가온 미래는........



필리핀


중국으로 가는 길에 또 풍랑을 만나 표류하여 현재는 필리핀의 영토인, 당시에는 스페인령의 루손 섬에 도착하였다. 이 과정에서 문순득 일행은 뿔뿔이 흩어지고 문순득은 루손 섬에서 9개월 체류하게 된다.



당시 문순득의 기분


역시나 자신의 인싸력을 주체할 수 없었던 문순득은 또 루손지역의 거주민들과 지내며 여송(루손 지역 토착언어)어까지 익히게 된다. 류큐국 시절과의 차이점이라면 류큐국에서는 융숭한 대접을 받아 나름 편하게 지냈다면 루손 섬에서는 약간의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용돈벌이는 자기 스스로 챙겨야 했다는 것. 문순득은 끈을 꼬아 파는 것으로 생계를 해결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문순득은 마냥 일만 한 것은 아니고 자신의 인싸력을 주체할 수 없었는지 루손 섬을 돌아다니며 나름 관광도 하고 사람도 사귀고 했다고 한다. 거의 머....



그 후, 1803년 8월에 루손에서 마카오 상선을 얻어타고 중국 마카오롤 이동한 문순득은 난징과 베이징을 거쳐 1804년 12월, 조선 한양에 도착하여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왔다.



문순득의 표류 노정도


문순득은 고향으로 돌아와 생업을 다시 시작했고 홍어를 거래하기 위해 흑산도에 들어갔는데 그 곳에서 유배 온 정약전을 만나게된다. 문순득은 자신의 표류기에 대해 정약전에게 이야기했고 흥미롭게 듣던 정약전은 문순득의 표류기에 대해 책을 쓰는데 그게 바로...



『표해시말』


문순득의 표류기는 정약전의 동생인 정약용에게도 전해졌으며 루손 지역에서 화폐의 유용성을 전해들은 정약용은 『경세유표』를 집필하며 화폐 개혁안을 제시하게 된다.


하루는 5명의 국적불명의 외국인 5명이 표류하여 제주도에 도착했는데 신원불명인채로 9년동안 체류했다. 조선은 이들을 베이징에 송환했지만 청나라에서도 이들을 모른다고 조선으로 재송환했다고...


하지만 문순득은 이들이 루손 사람임을 단번에 알아보고 루손어로 말을 걸었다. 당시 루손 사람들 반응은...



집에 갈 수 있드아아아아아아~!!!!!!


이러한 공로로 문순득은 종2품 공명첩을 하사받고 명예직 벼슬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한국 최초의 필리핀어 통역사인 셈이며 자신이 표류한 국가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10년동안 제주도에 갇혀 사는 루손인들을 보고 훗날 이 사람들이 조선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부끄러워 했다고 한다.


류큐국과 조선은 당시에 표류민을 본국으로 송환해주는 상호조약이 이미 있었지만 그것을 감안하고도 류큐어를 익혔다는 것은 원래 문순득이 언어습득감각이 좋고 친화력이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루손 섬에서 용돈벌이도 하면서 일을 한 점을 보면 굉장히 생활력도 강했던 것이 확실하다. 즉, 어딜가나 인싸력을 뿜어내는 캐릭터였다는 것. 그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문순득은 아시아의 로빈슨 크루소로서 우이도민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문순득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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