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사건들이 여럿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의 종말을 알리는 '위화도 회군', 백제의 멸망을 알리는 '황산벌 전투', 대한제국의 막을 내리는 '을사조약' 등등. 세계사적으로도 무수한 종말의 신호탄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유럽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대제국, 로마 제국 멸망의 신호탄을 알리는 콘스탄티노플 제 20차 공방전에 대해 포스팅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이 스토리는 '오스만 제국의 아침'이라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었으며 이 전투가 중세 유럽사, 그리고 이슬람사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넷플릭스 드라마 '오스만 제국의 꿈'에서 술탄으로 출연한 배우, Cem Yiğit Üzümoğlu (어떻게 읽는지;;;)
때는 1453년 봄. 21살의 야심만만한 오스만 베이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제국을 번성시키기 위해 큰 꿈을 실현시키려 한다. 바로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자신의 새로운 제국의 수도로 삼는 것! 콘스탄티노플은 유럽사 최강의 제국 수도였던 것 만큼, 많은 도전자들이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무려 1000년 가까이 19차례나 도전을 감행했으나....
1차(559): 쿠트리구르 족과 훈 족 연합군의 공격, 실패.
2차(626): 사산 왕조의 호스로 2세가 아바르인, 슬라브인과 협공, 실패.
3차(674~678):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무아위야 1세의 침공, 실패.
4차(717~718): 우마이야 왕조의 마슬라마 이븐 압드 알 말리크의 공략, 실패.
5차(813): 불가리아 제국의 칸 크룸의 공략, 실패.
6차(821~822): 동로마 제국 군인 토마스의 공략, 실패.
7차(860): 바랑기아인 류리크 휘하의 루스인이 공략, 실패.
8차(907): 키예프 공국의 대공 올레크의 공략, 실패.
9차(941): 키예프 공국의 대공 이고르의 공략, 실패.
10차(1047): 동로마 제국의 반란군인 레온 토르니키오스가 공략, 실패.
11차(1203): 제4차 십자군이 공략 시도, 실패.
12차(1204): 제4차 십자군이 공략 성공 (동로마 제국의 1차 멸망과 라틴 제국의 성립)
13차(1235): 니케아 제국과 불가리아 제국의 협공, 실패.
14차(1260): 니케아 제국의 황제 미하일 8세의 공략, 실패.
15차(1261): 미하일 8세의 공략 성공(라틴 제국의 멸망과 동로마 제국의 부활)
16차(1376): 안드로니코스 4세가 오스만 베이국의 도움을 얻어 공략 성공.
17차(1390~1402): 바예지트 1세의 봉쇄상태만 유지, 포위 해제.
18차(1411): 첼레비의 공략, 실패.
19차(1422): 무라트 2세의 공략,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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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해보니 함락된 적도 몇번 있네?..)
아무튼 대부분 함락에 실패할 정도로 콘스탄티노플은 난공불락 무적의 요새로 명성이 자자했다. 콘스탄티노플 최종함락이라는 위대한 도전을 메흐메트가 20번째에 해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메흐메트 2세는 왜 이 지역을 탐내려는 것일까? 우선 콘스탄티노플의 지리에 대해 알아보자!
콘스탄티노플의 위치
콘스탄티노플은 예로부터 정치적, 경제적으로 요충지에 있었고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요충지였다. 보스포루스 해협과의 폭이 1km밖에 되지 않고 물자를 손쉽게 옮길 수 있었기 때문에 교역의 주요 관문이었다.
또한 군사적으로도 중요했는데, 해협을 강 건너듯 이동시킬 수 있어 군대 이동에도 매우 편리했기 때문에 콘스탄티노플을 장악한다면 흑해를 장악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게다가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했다. 로마 제국의 황제는 곧 유럽 최고의 지도자임을 인증하였고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다. 도전자의 입장에서 콘스탄티노플에 군침을 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의 중요성에 대해 (동)로마 제국의 황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콘스탄티노플 서쪽에, 그 어떤 침략자도 막을 수 있는 총 길이 22km의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쌓으며 천혜의 요새를 구축해놓았다.
테오도시우스 성벽
성 제일 안쪽에는 내벽, 그리고 바깥 쪽에는 그보다 좀 낮은 외벽, 그리고 그 밖에는 흉벽이 자리잡고 있었고 흉벽 바깥에는 군사가 이동할 수 없는(헤엄쳐서?) 넓고 깊은 해자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각 벽마다 페리볼로스라는 병력이 주둔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즉, 침략자 입장에서는 넓고 깊은 해자를 겨우 넘으면 흉벽을 넘어야하고 흉벽을 넘어서 군사주둔공간에서 싸워야하며 그들을 전멸시키고 나면 또 외벽을 넘어야하고 외벽을 겨우 넘었다 싶으면 또 페리볼로스에서 혈전을 벌여야 하며 그들을 꺾어야 내벽을 넘볼 수 있으며 어째어째 겨우 내벽을 넘어 옥상에서 최후의 전투를 벌여 승리해야 성 안으로 들이닥칠 수 있었다. 해자부터 내벽까지의 거리는 50m가 넘으며 고저차는 30m에 육박한다.(차라리 날 잡아 잡수!!)
당시 콘스탄티노플
동쪽 하기아 소피아 방면 성벽은 고대부터 비잔티움 신전이 있었던 곳으로 고도가 높고 노출이 적으며 해협에서 밀려오는 강력한 해류를 직접 만나는 곳으로 바다 쪽으로는 접근이 매우 어려운 곳이다. 따라서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서쪽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노리는 수밖에 없다.
북쪽의 금각만의 경우는 해류의 영향도 없었고 만의 폭도 좁아 반대편 육지에서 지원 사격도 가능했고 실제로 4차 십자군은 이런 식으로 함락시켰다. 하지만 이때는 동로막 제국의 황제가 반대파에게 참살당할 정도로 상황이 안좋았고 내통자 때문에 성이 함락된 것이다. 이런 약점도 동로마 제국도 알고있었기에 금각만에 해군을 배치해 두었고 성벽의 수비군에게 지원 사격을 요청하도록 준비했다. 무엇보다도 만을 가로지르는 두꺼운 사슬을 설치하여 함대가 접근할 수 없게 하여 방어를 더욱 철저히 했다.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
야침찬 젊은 술탄 메흐메트 2세는 술탄에 오르자마자 콘스탄티노플로 가는 길목에 오스만의 요새를 세워 도발을 한다. 동로마 제국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1세는 당연히 항의했지만 메흐메트는 그것을 무시했다. 당시의 동로마 제국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고 이제 메흐메트는 과감히 10만이 넘는 병력을 출동시켜 자신의 계획을 실현에 옮기려 한다.
메흐메트 2세
하지만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총 병력은 5000명에 불과했고 무엇보다도 훌륭한 지휘관이 부재했다. 이에 동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당시 최고의 성벽방어 전문가, 제노바의 주스티니아니와 용병 2000명을 고용한다.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는 주스티니아니(간지)
물론 메흐메트 2세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당시 헝가리의 기술자로부터 '바실리카'라는 8.2m 짜리, 당시 최고의 기술을 집약시킨 대포를 구입하였고 이것을 콘스탄티노플 쪽으로 포격하게 되는데....
당시 사용되었다는 바실리카 대포
처음에는 콘스탄티노플 성벽안의 주민들은 혼돈에 빠졌지만 점차 소리에 익숙해졌고 (북핵문제에 둔감한 대한민국 국민들) 부정확한 명중률과 발사속도 때문에 포가 쉬는 동안에는 성벽을 보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계속되는 포격에 성벽이 아니라 포신이 못버텨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 오스만 군은 그럼에도 무리하게 포격을 감행하다가 자신들이 피해를 입는 사태가 발생한다.
다급해진 메흐메트 2세는 군사를 보내 공격을 개시하는데 판금갑옷으로 무장한 주스티니아니의 용병들이 외벽의 궁병들의 지원사격을 받아 오스만 군을 막아낸다. 메흐메트는 해자를 메우기 위해 군사를 보내지만 이 또한 주스티니아니가 눈치채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막아낸다.
주스티니아니: 훗!
해상으로 오스만의 해군은 콘스탄티노플의 보급선을 차단하기 위해 동쪽에 해군을 배치시켜 동로마 제국의 사기를 떨어뜨리려 했다. 그리고 먼저 제노바의 보급선이 들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고 보급선을 공격했으나....
당시 오스만은 노를 젓는 작은 배를 이용했고 유럽인들은 이미 갤리언이라는 거대한 범선을 타고 다녔다. 이순신 장군같은 포를 이용해 치고 빠지는 전술이 아닌 다음에야 당시의 해상 전투는 대부분 백병전이었는데 노 젓는 배가 범선과 싸우는 것은 평지에서 성벽을 타고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오스만의 해군은 발렸고 보급선은 무사히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한다.
콘스탄티누스 11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로마 제국의 군대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반대로 오스만 군은 더더욱 초조해져갔다. 땅굴을 파 침투하는 작전도 감행했으나 이마저도 실패. 오스만 군대는 지쳐갔고 동로마 제국의 지원군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렇게 20차 공방전도 실패로 끝나나 싶었는데....
천재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고 했던가? 메흐메트 2세는 기막힌 계책을 내는데...
배를 육지로 옮기는 바이킹들
방어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북쪽 금각만 방면으로 침투하려니 쇠사슬과 동로마 주둔 해군 때문에 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배를 육지로 옮겨가 몰래 침투하면 될 것이 아닌가? 사실 이런 전술은 메흐메트만의 전술은 아니고 바이킹 족도 이러한 방법을 써왔다고 한다.
물론 콘스탄티노플 바로 아래에 위치한 제노바의 무역 식민지, 갈라타에게 입단속(협박)을 시킨 후, 배를 하루만에 옮기는데 성공하고 동이 트자 바로 포격을 개시한다.
이제 전세는 오스만 군으로 넘어갔고 동로마 제국은 지쳐간다. 콘스탄티노플 내부에서는 제노바 용병들의 월급도 밀리기 시작했고 귀족들의 의견도 엇갈리는 반면 오스만 군은 메흐메트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졌다. 하지만 여전히 주스티니아니가 이끄는 성벽은 견고했고 메흐메트는 주스티니아니를 포섭하려 했으나 주스티니아니 왈!
재정이 바닥난 동로마 제국은 자신들의 금은 주화를 털어가며 버텼고 마침내 베네치아의 원군이 온다는 소문이 각 진영에 떠돌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같은 밤하늘에 개기월식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을 두고 두 진영은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붉은 달은 신의 분노 등 부정적인 의미이지만 오스만에서 붉은 달은 자신들이 승리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메시지였다. 메흐메트는 이를 심리적으로 잘 이용했고 군사들은 메흐메트를 따라 사기충전했다.
메흐메트: 우리의 승리다!!!!
그렇게 총공격이 개시된다.
무너지는 테오도시우스 성벽 그림
병력이 금각만에 분산되어 방어선이 약해진 서쪽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마침내 무너졌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주스티니아니마저 큰 부상을 당했다. 그렇게 주스티니아니는 피신하여 이틀만에 사망했고 패배를 직감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마지막까지 황제의 가오를 잃지 않으며 멋지게 한 마디를 남긴다.
무릎을 꿇고 목숨을 부지하느니 두 발로 서서 전사하겠다!!!(핵간지)
최후까지 싸우기 위해 달려가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
그렇게 동로마 제국의 오랜 영광은 막을 내리게 된다.
새로운 오스만 제국의 서막을 올리는 메흐메트 2세
이 전투는 대포로 도시를 정복한 최초의 대규모 전투로 기억된다. 이 전투로 인해 성벽의 유용성은 점점 퇴색해갔고 포 전술의 유용성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 위대한 제국은 점점 더 많은 지역을 정복하여 유럽의 1/3, 북아프리카, 중동지역 심지어는 동남아의 일부 지역까지 차지하게 된다.
오스만 제국의 최대 영토
그렇다면 새로운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된 콘스탄티노플은 어떻게 되었을까? 오스만 제국의 번영과 함께 이 도시도 번영을 거듭했고 1922년 술탄제가 폐지될 때까지 무려 1592년 동안 여러 제국의 수도로 군림했다. 그 도시가 지금의..
우리가 그렇게 여행으로 많이 가는 '이스탄불'이다. 현재도 인구 150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대도시이며(서울+부산 인구보다 많다.) 터키 공화국으로 넘어오면서 수도의 지위는 잃었지만 여전히 유럽 최대 도시 중 하나이다. (현재는 금각만 아래 쪽 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도 이스탄불로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경기도와 같은 위성도시 포함? 서울시가 강서구, 강남지역, 강동, 도봉 지역까지 편입시킨 것과 비슷한 예)
이스탄불의 밤하늘, 이제는 아시아 지역도 포함된 모양이다
이스탄불의 풍경
좌측이 구 콘스탄티노플 지역, 바로 위에 금각만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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