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의 "역사" 한마당

조선시대의 비행기, 비거(비차)에 대하여

잡지식을 다루는 살찐 다람쥐 2020. 12. 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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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라 하면 누구를 떠올리는가? 아마 20세기 초반 미국의 비행기 제작자, 라이트 형제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6세기 후반무렵, 조선에는 이미 비거(비차)라는 비행기가 발명되었고 전쟁 당시에 엄청난 활용가치를 뽐냈다고 한다. 그것도 라이트 형제의 초기모델 비행기 주행거리가 몇 십 미터인데에 반해, 조선의 비행기는 30리(12km)에 육박했다고...과연 비거란 어떤 비행체일까? 살찐 다람쥐가 알아보았다.



복원된 조선시대 비행체, 비거(비차)


때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다음 해인 1592년, 제 1차 진주성 전투에서 김시민 장군의 대활약으로 일본군은 패퇴했고 일본군은 리벤지를 결심하며 스타군단을 구성, 총 9만이 넘는 대부대로 진주성을 재공격하기에 이른다. 임진왜란의 내로라하는 장군, 의병장들도 진주성 구원을 포기할 정도였고, 일본군은 1차전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그들의 어벤져스를 출동시켜 진주성을 포위시킨다.



1차전에서 진주성을 구원했던 영웅, 김시민 목사는 이미 죽고 없다. 그리고 겨우 6천의 군사로(이것도 정규 군인과 비정규 의병들의 합산) 진주성을 지키다 결국 패색이 짙어지게 된다. 일본군은 독이 올랐고 열띤 공세끝에 진주성을 함락하기에 이르렀으나 그들은 자신들의 눈 앞에 믿기지 않을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저게 멍미????



행글라이더(21세기 비거)


조선군은 이 비거('비차'라고도 부른다.)를 이용해 군민들 피난도 보내고 연락도 하며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단다. 하늘을 날아 30리(12키로)나 이동하는 모습에 일본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군은 멘탈을 다잡고 진주성을 공격! 끝내 함락시키고 진주성을 지키던 조선군은 전멸하기에 이르고 전쟁 후에도 과학을 등한시하던 성리학이 판을 치면서 비거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다.


그렇다면 이 '비거'라는 비행체는 누가 어떻게 만들어낸 것일까? 일단 제작자는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정평구라는 사람이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말단 무관으로 김시민의 휘하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정평구: 장군님! 제 발명품 한번 타보는게 어떻습니까?


김시민 장군: 신나 보이는구만! (너나 타라! 이 새꺄!!!!)


그는 비행체를 만들어 전쟁 개전 후, 자신이 만든 비행체를 이용해 전투에 이용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비행체의 형태나 원리는 알려지지 않았고, 조선시대판 열기구다, 행글라이더다 하는 말이 있지만 아직 뚜렷한 증거는 없다. 그리고 대부분 구전이나 불분명한 자료를 통해 전해지는 내용이라 실제 비거를 그대로 구현해내기도 쉽지 않다. 실제로 현대의 많은 기관, 단체들이 비거를 당시 기술력으로 구현해내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실제로 그 기술을 그대로 사용했을지도 확실치 않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거쳐 혁신을 이루었고 일본 역시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우리는 300년이나 빨리 비행체를 만들 정도로 우수한 과학 기술력을 보유함에도 이를 등한시하고, 성리학에만 치중하여 다른 나라에 비해  과학기술의 발전이 정체되어 결국 35년간의 일제 강점기 시절을 겪어야만 했다. 라이트 형제보다 3백년은 앞서 우리의 기술력으로 비행체를 만들었던, 하지만 기술 천대시로 인해 과거 나라를 잃고 암울한 시기를 겪었던 조선과 현재 이공계를 기피하고(억지로 취업용으로 진학 제외) 기초과학을 등한시하는 21세기의 대한민국. 우리는 이를 반면교사삼아 또다시 아픈 과거를 되풀히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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